추사(김정희)고택을 찾아서 과거로의 여행
추사 김정희 선생의 일화중에
추사는 신동답게 어려서 기억력이 뛰어났고 일찍 글을 깨우쳐서
여섯 살 때는 ‘입춘대길’이라는 글씨를 써서 대문에 붙일 정도였다고
김승렬의 묘비문에 의하면
여섯 살 때 추사가 쓴 [입춘첩]을 월성위궁 대문에 붙였는데
당시 북학파의 대가인 초정 박제가가 지나가다가
이 글씨를 보고는 들어와 추사의 부친을 찾아뵙고
“이 아이는 앞으로 학문과 예술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만하니
제가 가르쳐서 성취 시키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크게 될려면 때를 잘 만나야 하며
키워즐 스승을 잘만나야 한다고 생각이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스승 박제가는
당시 천대받던 서출 출신 이였다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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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선생의 유명한 그림 세한도는
선생의 나이 50대 후반에그려진 작품이다
조선 말기를 풍미하였던 그의 문인화 이념의 집약된 경지와 함께
조선시대 문인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서화일치를 추구한 추사 김정희의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인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사고택은 266.11m²(80.5평)으로 솟을 대문의 문간채, ㄱ자형의 사랑채, ㅁ자형의 안채와 추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옥이다. ㄱ자형의 사랑채는 남쪽엔 한칸, 동쪽에 두칸의 온돌방과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에는 6칸 대청과 2간통의 안방, 건넌방이 있다. 이밖에도 추사 선생의 묘소와 증조부이신 김한신과 부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그리고 화순옹주 열녀문 즉,홍문이 있다. 또한 추사고택에서 북쪽으로 600m쯤 올라가면 천연기념물 제 106호인 백송을 볼 수 있는데 백송은 중국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 나라에 몇 그루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예산의 백송은 추사선생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던 것으로, 원래는 밑에서 50cm부터 세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다. 1980년도에 줄기의 피해 부분을 외과 수술하여 치유하였고, 그 후부터는 철저하게 보호, 관리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추사고택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