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 ,연필 인물화 얼굴 배율 공식으로 그리기
남자라면 강해지고 싶은 욕망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무술영화나 격투기를 재미있게 보곤한다
오래 전 이소룡 영화에 빠져들곤 했는데
지금은 부르스리 라는 이름이 추억이 되었지만 과거 이소룡은 굉장히 존경스러운 인물이었다.
비록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그가 죽지 않고 계속 잘나갔더라면
지금의 전설보다도 뭔가 훨씬 큰 것을 이루었을 거라는 생각이든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그림을 그리는 과정(20분 완성)의 영상이 보입니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요즘 사람들중에 이소룡의 강함에 대해서 뭐라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어떤사람은 이소룡은 배우이지 무술가가 아니라는둥
현대의 발전된 트레이닝을 통해서 강해진 현대의 파이터들과 싸우면 질거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
이소룡은 어릴때부터 배우를 했었다.
무술을 배우기도 전인 어릴때부터 배우였다
아버지가 연극배우였기 때문에 배우의 길에 다른 어린이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소룡은 배우가 맞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소룡의 무술적인 면모를 겨우 영화의 연출이라는 포장으로 덮어버리면 곤란하다.
그는 어릴때부터 무술을 좋아해서 평생을 무술연마를 한 사람이다.
이소룡이 미국으로 건너가
절권도를 창시했을 당시에는 단역 배우로 일을 하며
차이나 타운에 체육관을 설립하여 제자들을 가리키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무술대회에 게스트로 참가하여 이 때 처음으로 절권도를 선보인다.
이소룡이 선보인 동작은 일인치 펀치로 이 동작으로 무술대회 참가자와 관계자들을 경악시켰다.
그 이후, 이소룡은 영화배우며 무술가로 전세계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아무래도 유명세가 높아지니 그는 행동 하나하나에 매우 조심했고 신중했다.
그의 무술을 보면서 많은 무술 유단자들이나 고수들이 이소룡과 겨뤄 보고 싶다고 찾아왔지만
이소룡은 일부러 그런 도전을 거부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맹룡과강 촬영 중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마지막 장면인 척 노리스와의 촬영을 하기 위해
영화를 찍던 중 100킬로가 넘는 거구 사내가 나타나 영화 작업을 방해했다.
그는 역도선수였고 이소룡에게 자신을 주먹으로 쳐서 쓰러뜨려 보라고 하였다.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이소룡은 처음에는 계속 거절을 했지만
날마다 찾아오는 역도선수로 인해 영화 작업이 진전이 되지 않아 그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결과는 이소룡의 펀치로 그 역도선수는 나가 떨어졌고 다시는 촬영장에 얼씬거리지 않았다고한다.
이소룡은 실전 싸움도 많이 했다.
실제 싸움을 몇 번이나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린시절 모든 무술을 가리지 않고 섭렵했으며
실전 싸움도 많이 익혔기 때문에 완전 실전 무술인 절권도를 창시 할 수 있었다고한다.
학창시절 복싱 홍콩 학생 챔피언을 획득했고 나쁜친구들과 어울리며 싸움을 많이 했지만
무차별 싸움은 이 때 뿐이었고 미국으로 간 뒤 그는 영화에 관련된 직업과 무술사범으로 살아갔다.
단순히 무술 영화 몇 편에서 주연을 맡은 연기자가 아닌
이소룡은 실전 무술을 몸에 익힌 당대 최고의 무술인 중 한 명 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것은 배우나 무술인으로만 남은 이소룡이 아니라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기 까지 했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한시절 부르스리에 빠져들었던 추억이 오래도록 남아있는것 자체가 소중한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