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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 국화 그리기

청솔아트 2019. 9. 15. 16:55

수묵으로 국화를 그리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다.
국화의 종류도 수천 종류가 있다고 하니 그래서 그런가
오래된 옛날의 국화 그림에는  잎이 작은 소국과 들국화와 함께 있는 석국도를 많이 그렸는데
요즘에는 꽃잎이 큰 대국화가  그림 속에서 많이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19세기경 소치 허련 선생이 그린 석국도가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온다. 
이때의 그림 속에서의 국화는 소국으로 그려져 있는 걸 알수가 있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그림 제작 과정의 영상이 보입니다



국(菊)화는 가을 ,서쪽,의(義)의 뜻이있고 모든 식물이 시들고 낙엽이 지는마당에
홀로 피는 꽃,서리를 맞아 가면서도 굳게 피는 그 절개를 높히 평가 한다.
오상고절(傲霜孤節) ,서릿발이 심한 추위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꼿꼿이 꽃을 피우는 국화의 절개,은자의 정절의 상징 국화
국화가 사군자중의 한자리를 차지하여 절기있는 꽃으로 찬양받고 있지만
 국화만을 소재로한 옛 그림은 찾기란 쉽지가 않다.
오히려 그림보다는 시로 더 많은 사랑을 받은것 같기도 하다.꺾꽂이로도
 땅에 뿌리 내리는 강인한 국화는 다른 꽃들이 만발하는 좋은 시절을 참으며
서리 내리는 늦은 가을에 인내를 꽃 피운다.
이같은 생태를 절개로 보아 온 옛 선비들은 국화를 오상고절이 라며 사랑해 왔다,
현세에서 외면당하는 굳은 지조를 그렇게 비유하며 국화를 아꼈는지도 모른다.

조선조 중기이후 채국(彩菊,채색을한 국화도)으로 등장한 우리나라 국화는
고절한 선비들의 사랑을 받으며 묵화로 더 빛을 발한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국화의 생태와 절기를 사랑하는 선비들이니 그 빛갈을 탐 했을리 없고 그져 마음 가는데로 쳐서
족자나 병풍에 절기를담아 가까히 하려 했을것이니 시 쓰던 붓으로 그 정절을 화선지에 옮기고 홀로즐겼을 것이다.
따라서 수묵 국화도는 화려함 보다 오히려 오만스런 자태를 더 높히 본다,
수묵 국화도에는 절개를 높혀 본 한국인의 정신이 담겨야 한다는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