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의 수묵화

추억의 딱지치기와 굴렁쇠놀이

청솔아트 2021. 9. 2. 14:02

나의 유년시절이었던 1960년대 시골 마을 딱지치기 놀이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내본다 .
당시의 딱지치기는 빤지 또는 빳지로 불리어졌는데 일본어에서 유래된 것 같다
딱지치기의 유래에 대해 삼국유사등 고전에도 언급이 없는데
조선 시대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화투와 마찬가지로  근대에 생긴 놀이일 가능성이 크다

 

동영상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Tsris5PffMs

 

 

 

 

 

1926년 동아일보에 
'야야야야 나오너라 건너집에 큰마당에 아이들이 만히모여 자미잇게 딱지친다'
라고 딱지치기에 대한 제목의  신문기사가 나오는데 아마 그즘시절인것 같은 생각이든다.


종이를 접어서 만드는 종이접이 딱지나 
인쇄된 종이를 오려서 노는 인쇄그림 딱지를 가지고 노는 놀이었는데 
어떤 딱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놀이 방법이 다르다. 
종이접이 딱지는 바닥에 딱지를 놓고 다른 딱지로 내려쳐서 뒤집는 놀이고, 
인쇄그림 딱지는 딱지에 그려진 계급, 숫자, 별의 개수 등을 겨루는 놀이다. 
그림 딱지는 한국전쟁 이후 유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sris5PffMs

 

 

 

 

 

 

종이로 만든 딱지를 땅바닥에 놓고, 
다른 딱지로 힘껏 내리쳐서 뒤집는 놀이다. 
딱지의 가장자리 또는 딱지 바로 옆 바닥을 겨냥해야 성공할 수 있다. 
상대방의 딱지가 뒤집히거나 놀이 전에 정해놓은 선 밖으로 내보내면 이긴다. 
딱지는 두꺼운 종이를 접어 만들 수도 있고, 
인쇄된 종이를 오려서 놀기도 했다. 대개 남자아이들이 즐겼다.


1960년대에는 군인 계급장이 그려진 그림 딱지가 등장해서 재미와 경쟁을 더했다. 
이때부터 딱지를 쳐서 따먹는 것 외에, 딱지에 그려진 
군인의 계급이 높고 낮음에 따라 승부를 가르는 놀이 방식이 생겼다.
1961년  경향신문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부터 대여섯 살짜리 아이들이
그저 만화와 딱지치기에 골몰하여 골목이 부산하다. '
라는 신문 기사가 있다.


딱지치기 놀이는 한국전쟁 이후에 유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끝나고 산업경제의 발전과 함께 두껍고 질긴 종이가 다량 생산된 덕분이다. 
딱치지기와 유사한 놀이로 빳지치기[빤치치기]가 있다. 
딱지치기와 빳지치기를 같은 놀이로 보기도 하지만 약간 다르다. 
빳지는  접는 방식에 따라 
시가꾸 빳지와, 야마시 빳지[사진 이미지]로 나뉜다. 
이 중 야마시 빳지는 종이 한 개로 접는데, 앞면과 뒷면이 같은 모양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자신의 딱지를 넘겨도 정신 차리고 보지 않으면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눈속임 딱지놀이인 셈이다.


마분지 비료포대 시멘트 포대,  달력 , 신문지, 공책, 헌책 등을 접어 만든다. 
처음에는
사다리꼴로 접는 딱지를 가지고 놀았으나, 
곧 사각형으로 접는 방석 딱지가 널리 퍼져 일반화됐다
딱지를 칠 때 발을 상대 딱지 바로 옆에 대면 딱지가 잘 뒤집힌다. 
그리고 딱지의 종이를 두껍고 크게 할수록 유리하다.
찔러먹기는 딱지를 쳐서 자신의 딱지가 상대편 딱지 밑으로 들어가면 상대편 딱지를 따먹는다.
그리고 넘겨먹기는 딱지를 쳐서 상대편 딱지가 뒤집히면 이긴다.
내보내서 먹기는 금 밖으로 상대방의 딱지를 내보내서 따먹는다.


인쇄그림 딱지를 이용한 딱지놀이
딱지를 골고루 섞어 두 손에 쥔 다음 한 손을 내민다.
상대편도 똑같이 손에 잡히는 만큼 내민다. 
그러고는 계급·글자 ·숫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후, 서로 손을 펴 보인다. 
계급으로 정한 경우에는 높은 계급의 딱지가 나온 쪽이 이긴다.
 진 쪽은 손에 쥔 만큼 딱지를 건네줘야 한다.
 이 외에 한 손을 딱지 옆에 대고 손바람으로 딱지를 뒤집어 따먹기도 하고 
종이접이 딱지처럼 직접 땅에 대고 넘겨치기 먹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