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3. 19:24ㆍ자전적 소설[후박나무 전설]
이 글은 거제도 서이말 등대에서
3대에 걸쳐 등대지기를 이어가는 등대원 가족과 그 등대옆 오두막 집에서
젖먹이때 대리고 온 수양딸을 키우며 함게 살았던 돌쇠영감 내외의 실제로 있었던 파란 했던 삶의 이야기를
연재소설 형식으로 글을 써 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서이말 등대 한울타리 속에 이웃하여 근무 하면서 15여년간 등대원과 함께 생활 하였습니다
서이말을 떠난 후에도 몇년이 더 흐른 다음 이제서야 이글을 씁니다
묻어 두기엔 너무 아까운 이야기 라서..
전해 들은 이야기도 있고, 실제와 부합 (이름은 가명)하지 않는내용이 포함 되어도
소설로 쓴 것임을 밝혀 둡니다.
처음 읽어보는 분에게 내가 글을 스는 취지를 서두에 다시 설명 하다보니까 같은 내용이
여러번 중복되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훗날 하나의 글로 다시 묶어 올리겠습니다
1997년에 신문사에서 원고를 보내달라고 해서 준비한 것이었으나
경북 울진으로 갑짜기 전근을 가는 바람에 이제까지 묻어 두었는데 다시 찾아낸 당시의 자료들 입니다
[게시글 저작권있음]
거제도( 1986년~1998년 )에서 쓴 일기장 중에서
제목: 후박나무의 전설
제 1부 전설의 등대
1986년 9월
내가 근무지 배치를 받고 거제도 서이말 등대[ 한울타리 내 (內)]와 이웃한
서이말에 부임을 해 왔는데 그 당시 서이말 등대 ( 항로 표지관리소 )에는 김형진 등대소장과
주사급 직원이 2명을 포함해서 3명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곳 서이말등대는 일제 강점기 시대 부터 있었는데 관리청이 마산 지방항만청인데
경남 통영군 소재 매물도등대와 무인도 홍도(통영군 갈매기섬) 등대
그리고 지금은 부산지방 항만청관리소관
으로 넘어간 진해 가덕도등대등 유인등대 네곳을 관할하며
2년마다 등대 직원이 순환보직을 하면서 근무를 하는 곳이였다
지금은 갈매기섬 홍도 등대가 무인 등대로 되어 서이말 등대 에서 원격운영 되지만
당시에는 등대원들이 항만청 보급선을 타고 서이말 선창 머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고
풍랑이 심하면 홍도에 접안도 못하고 되돌아 오는 때도 있었다
등대 숙소근처에 작은 초가집이 한채 있는데
거제 포로수용소 반공포로 출신 이었던 돌쇠 영감 내외가 거제도 저구항 에서
등대 박 소장이 젖먹이때 데리고 온 동숙을 수양딸로 삼아서 함께 살았다
동숙은 김형진 등대장의 아들 현석과 인근 지세포리에 위치한 중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친삼촌이란 사람이 나타나는 바람에 중퇴를 하고 부산으로 돈벌이를 하러 떠났다고 한다
돌쇠영감내외는 등대 보급선이 오면 선창에서 등대 사무소까지 등짐도 같이 져주고 등대일을 도와 주며
바닷가에서 고기도 잡고 해산물을 따고, 인근 야산에서 약초도 캐서 팔면서 생계를 유지 하였는데
내가 이곳에 부임해 왔을때 돌쇠영감은 두달전에 등대 아래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바닷물에 휩쓸려서 그만 황천길로 가버렸다고 한다
이곳 등대아래 바닷가에는 순간 파도가 자주 밀려와 낚시꾼 들의 익사 사고가 잦은 곳이다
나 또한 부하 사병을 이곳 바다에서 잃어 버렸다 지금은 대전 현충원에 고이 잠들어 있지만..
지금도 서이말 등대 아래 바위에는 그병사 추모비가 서 있다
등대 숙소는 지금은 현대식으로 지었지만
당시에는 연탄을 때는 구식 건물 였는데 이곳에 부친의 대를 이어 등대원 근무를 하는
김소장은 태풍이 몰아 치던날 이곳 등대 숙소에서 산고를 겪다가 여건상 병원도 못 가보고 숨졌다
첫번째 부인을 인근 등대 야산에 묻고 그후 재혼을 하였는데
전부인의 4남매를 훌륭하게 키운 현석씨의 새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현석은 아버지 김소장의 대를 이어 3대째 등대원으로 새삶을 시작하여
통영 매물도에서 초보 등대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현석씨는 등대에서 돌쇠할멈 수양딸 동숙이와 어린시절을 등대에서 같이 보냈는데
둘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등대원들 그들만의 가슴저린 삶의 이야기는
김형진 등대소장이 순환 근무차 통영 갈매기 섬인 홍도등대로 떠나고
홍도등대 소장으로 근무하다가 서이말 등대로 온 박영준등대장이이 나에게 들려준
전설처럼 들리는 등대 이야기가 참으로 파란하고 눈물겨운 내용 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부터 유명했던 전설의 서이말 등대 내력을 알수가 있었다 ......중략
1990 1.1 서이말 등대
제 2부 무인도로 떠나는 사람들
해무(바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늦가을 아침
''우웅 .'' ''우웅.''
등대에서 울리는 무적 소리가 서이말의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해무 때문에 서이말 등대 앞 해로(바다에서 정해진 길)를 지나가는
선박의 항로 이탈을 방지하고
선박 끼리 충돌을 막기 위해 서이말 등대에서 200 킬로와트 대형 발전기로
등대 옥상건물위 대형 나팔관을 통해 울려대는 것이다
이 무적소리가 밤에는 멀리 부산에서도 들린다고 한다
아침에 등대에서 전화가 왔다
'' 동안 고마웠습니다 지금 떠납니다 .''
힘이없는 등대 김소장의 목소리였다
'' 예 ! 지금 선창가로 내려 갈께요.''
오늘은 등대직원들이 2년 보직기간을 마치고 다음 순환 근무지인
홍도등대와 매물도등대 로 떠나고 그곳의 등대원들이 서이말 등대로 오는날 날이다
마산 항만청에서 보급선이 오는 날 , 한달에 한번 보급선이 오는데
이곳 서이말등대를 들렀다가 통영 홍도 등대에 보급품을 내려놓고 매물도 등대로 이동한다
이 보급선을 이용하여 등대원 이삿짐을 실고 이동을 하게 되는데
뱃머리 선창가와 등대사무소는 는 200 여미터 꼭대기 위에
위치해 있어 등대로 오르는 길(475계단)을 통해서
일일이 등짐을 지고 날라야 하는데 보통 힘든것이 아니다
이삿짐은 얼마 되지 않지만 등대원 3명 중 한사람은 휴가중 뭍으로 나가고
한사람은 사무실을 지켜야 하기에 등대원 혼자 일을 할수는 없다
전에는 돌쇠 영감 내외가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으나 돌쇠영감이 바로 이 선창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바다에 빠져 숨지고 말았으니 더욱 등대일이 힘이 들었다
그래도 인근에 있던 우리 부대원들이 전날 등대원 이삿짐은 날라주고 이삿짐은
선창가 작은 창고 아래 보관해 두었으니 보급선이 접안 하면 배안에 실으면 되게 해두었다
일본 대마도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서이말앞 해상은 파도가 높고 가상변화가 무척 심한곳이다
바다에 해무낀 날은 해무가 벗겨지면 날씨가 좋아 지는데도 이날은 그렇지가 못했다
예감이 좋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언제나 24시간 바다의 기상 상태만 바라 보는 나는
등대일이 나의 일도 아니지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외롭게 같이 고생을 해와서 그런가 밥솥까지 이삿짐에 쌌던데 ..
홍도에 배가 접안을 못하고 되돌아오면 무슨 낭패인가 .
그것을 모르는 등대사람들이 아닐 테지만
무인도인 홍도 등대원은 한달여 동안 뭍으로 못나와 먹을 양식도 없을텐데..
가족들도 있는 사람들인데 얼마나 육지로 나오고 싶겠나.
보급선이 다시 뜰려면 기상이 회복되고 최소한 일주일은 결려야 하는데....
홍도등대 에서도 아침기상은 좋다고 마산 항만청에 무전 보고를 했고
서이말 등대 에서도 무전보고를 해서 예정대로 보급선은 아침일찍
마산항을 출발을 했다고 한다 .........중략
서이말 등대 아래 바닷가 내려가는 선창가 (470계단)
제 3부 무심한 너울 파도
등대 보급선이 서이말 해상 영역 으로 진입 했을때
나는 선창가로 내려가고 있었다
등대에서 선창가 내려가는 475계단 길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숲이 어름나무 덩굴과 잘어우러져
나무 동굴처럼 생겼다
이곳은 통제지역 이고 사람들이 왕래가 적어 자연 숲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조선시대 때 부터 있었는데 임진왜란 당시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노랗게 익어터진 바나나처럼 생긴 어름 열매가 한얀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었는데 보기가 아주 좋았다
선창가에는 홍도등대로 떠날 김형진 소장과 돌쇠할멈이 보급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쇠할멈(실제이름)은 돌쇠영감이 이곳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바닷물에 휩쓸려가 목숨을 잃은후
등대옆 오두막 집에서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고 산에 약초캐는 일도 접은채로 두문불출 하였는데
홍도로 떠나는 김소장 배웅차 내려 온것이지만
그보다도 홍도에서 오는 박영준 소장을 더 기다리는 듯 했다
내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자 돌쇠 함멈이 계단을 올라온다 나는 뛰어 내려가면서
'' 할머니 오지말고 거기 계세요.'' 하고 외쳤다
머리엔 항상 빛바랜 파란색 군용 수건을 둘르고 구부정한 허리에도 고개는 언제나
꽂꽂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선창에 내려와 돌쇠할멈과 김소장에게 인사를 하자
동안 마음고생으로 많이 야위신 할머니께서 두손으로 내손을 잡고 어쩌할바를 모른다
''할머니 ..억지로라도 밥을 많이 드세요?.''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신다
맑금히 손수 세탁을 해 입은 잠바 차림에 김소장 손에는 노란색 가방 보따리가 들려져 있었다
마산 본가에서 가족들을 돌보고 있는 김소장 부인이 마른반찬을 만들어 등대숙소로 오가곤 했는데
김소장 이 무인도 홍도등대로 떠나면서 이제는 김소장 부인을 앞으로는 자주 볼수가 없지만
그래도 아들 현석씨가 매물도 등대에서 이곳 등대원으로 부임해오니 가끔은 볼수가 있을것 같다
''파도가 좀 높은데 바닷길이 어때요?.'' 김소장에게 물으니
허허허 웃으며 ''글쎄요.'' '' 오늘은 백서방이 온다니 홍도에 들어 가겠지요 .''
백서방은 홍도에서 이곳으로 오는 박영준 소장의 사위 이다
등대원으로 근무를 하다 항만청 의 등대 보급선및 남해안 곳곳에 산재해 있는
유무인 등대의 정비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등대 선창에 배를 대는 선착장은 따로 없다 있어도 방파제가 없는 곳에는 자주 오는 태풍에
쓸려 내려 가버리니 따로 만들지를 않고 보급선은 바다에 떠있고
작은 고무 보트에 보급품을 옮겨 실어 나른다
오늘은 홍도에 있던 장인인 박소장이 뭍으로 나와 서이말 등대로
오는 날이니 사위인 백서방이 직접 배에 승선을 한 모양이다
파도가 심하면 홍도에 고무보트 조차 접안 하기가
힘들지만 가상이 나빠져도 사위인 백서방이 억지로라도 홍도안에 들어갈 모양이다
''바위섬인 홍도등대 에서도 천수를 받아 쓰나요?. ''
내가 물으니 그렇다고 김소장은 대답한다
천수는 수도시설이 따로없어 지붕에 내리는 빗물을 받아다가
땅속 물탱크에 저장해 놓고 이물을 끓여서 식수로 쓴다
다른 고생이야 다 하지만 먹는 물이 금보다 귀한곳이 등대이다
그럼 비가 안오면 어떻 하냐고 물어 볼려다가
''갑짜기 홍도에서 아프면 어떻하죠?.'' 다시 물었다
참고 지내다가 정 안되면 해군에 긴급헬기를 요청한다고 한다
119도 없던시절 홍도등대 에서 실제로 있는 일이였다
''홍도에는 바람도 심하게불고 태풍도 자주 오는 길목인데 해군헬기도 못뜨면 어떻하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김소장 하는말이
''허 허 허 죽어야죠 뭐 .''...
저만치에 고동을 울리며 하얀색의 항만청 보급선이 다가온다
갑판위에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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