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26. 06:08ㆍ청솔의 가요산책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었다면
과거를 거슬러 가야만 돌아갈수가 있다
지난날 삶을 헛되게 살았던 사람은
자기반성은 하지않고 현실만을 탓한다
선한 눈으로 사물을 보는 사람은 세상이 행복하게 보이지만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자는 세상이 온통 쓸쓸하게 보이며
언제나 불행한 사람일 뿐이다
한국 락의 선구자그룹 전인권이 이끌던 들국화
그들은 지하에서부터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처음부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창작력과 연주력을 보여주면서
직수입된 팝송이나 록 음악에 심취해서 "국산 가요" 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청소년들을 단번에 휘어잡아 들국화의 추종자로 만들어 버렸다.
컬트라고 하기엔 너무나 광범위하고, 폭발적인 현상이였다
85년 앨범을 내기전 입소문으로 먼저 알려져 인기를 끌었다
1집의 멤버였던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조덕환은 모두 통기타진영에서
오랫동안 무명시절을 거쳤다.
이들은 81년도 초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인간적, 음악적 조우를 해왔고
결국 85년 들국화 1집을 대중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그들의 음악활동 기간을 뛰어넘는 결과물이었다.
전인권은 음악감상실 '쉘부르'출신으로 전국을 유랑하며 통기타업소에서 노래하곤 했다.
쉘부르는 DJ로 유명한 이종환이 운영하던 통기타 업소로
70년대 초 통기타진영의 중심이었던 ‘쎄시봉’의 쇠퇴 이후 새로운
통기타가수들의 중심이 되었다.
전인권은 이후 78년 강인원, 이주원, 나동민과 활동하며 '맴도는 얼굴'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대중들에게도 제법 알려져 있었고 전인권이 들국화로 활동하기 전까지
그의 얼굴과도 같은 곡이었다.
전인권은 앨범발표 이후 얼마안되어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80년에는 히트레코드사에서 통기타성향의 전인권 1집을 발표하지만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
80년대 초 전인권은 세션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함춘호의 소개로
허성욱과 조덕환, 한춘근[후에 백두산의 드러머로 활동]을 만나 강릉의 한 디스코텍에서 그룹음악을 처음 시작한다.
그러나 한달후 팀은 해체되었다
80년대초는 통기타가수들의 기반이었던 업소들이 사라지던 시기이고
그들이 가수 생활을 위해서는 디스코텍 같은 업소에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해야했다.
업소에서는 당시에 유행하던 댄스음악을 주로 연주했고 그외에 간간히
그들이 좋아하는 팝이나 록음악을 연주할수있었다. 통기타출신 가수들도 뜻이맞는 친구들끼리
그룹을 결성하며 업소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적 방향도 모색하고 금전적인 문제도 해결하곤 했다.
1985년 본격적으로 들국화 라는 그룹명을 달고 ‘행진’등이 수록된
들국화의 1집은 성공하였지만 2집앨범은 그리 빛을 보지 못하였고
갑작스런 멤버 조덕환의 미국행과 팀내 불화와 금전적인 문제로 들국화는 결국 해체의 길을 걷고 말았는데
그후에도 다른멤버들이 합류하면서 잠시함께 활동하였으나
오래 가지를 못하고 전인권을 비롯하여 다른 멤버들은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래 헛사랑 노래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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