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에 희망을준 그라운드의 영웅[1] - 박철순 투수

2013. 2. 14. 07:00 인물 일러스트삽화

 

불사조라 불리운 사나이  박철순 선수

 

1982년 한시즌 최다연승[22연승]의 주인공

1996년에도   평균자책점 2.62을 기록하고

한국 프로야구의 최상의 투수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가 은퇴의 작별인사를 하는순간 

잠실구장에는 박철순을 상징하는 곡인''My Way''가

울려퍼졌으며 그를 아끼는 많은 야구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뛰었던 다이아몬드안 투구판에 입을 맞추고,

투수로서 영원히 은퇴를 하고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났다   - 청솔의 언제나 푸른나무

 

                                                                          위의 이미지는  장차에 웹툰,웹소설에 삽입될 창작된 삽화임

                                                                                                         아미지 무단 사용을 금지함

 

박철순의 역사

 

박철순 선수는  1980년, 1981년을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우리나라 야구선수로는 최초 미국 진출이었다.

비록  마이너리그에서 뛰었지만,

많은 변화구들을 배우고

그는 한국의 프로야구 첫시즌에 나오기위해 한국행을 결심한다.

 

프로야구 첫해에  앞으로는 아마도 나오지못할 22연승의 기록이 나온다.

4월 10일 해태전 구원승부터

9월 18일 롯데전 완봉승까지였다.

박철순 선수는

1982년 야구 원년 OB베어스의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사실 이때는 프로야구라고 하기 힘들만큼 어수선했다고 볼 수 있다

그 틈에서 빛을 발휘 한 선수가 이 박철순 선수가 아닌가 생각된다

야구 원년 22승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역시 OB베어스 첫 우승의 주역이였다

박철순 선수는 기록보다는 불사조라는 상징성 때문에 유명한 선수이기도 하다.

 한국인 사상 최초로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하여 싱글A, 더블A를 거쳤으며,

82년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가 생기지 않았다면

박철순 선수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선수였다.

 

 

그런데

마이너리그를 지나  메이저 리그 진입을 앞두고 그는 왜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

OB베어스의 초대 감독인 김영덕 감독은 박철순 선수만 있으면 우승도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OB 단장이 미국까지 날아가 박철순 선수를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우리나라에도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소식에 메이저리거의 꿈을 접고 귀국했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박철순 선수는 22연승 포함, 24승을 올리며 팀의 전기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고 다승1위, 평균자책1위, 승률1위로 페넌트레이스 MVP까지 수상했다.

 

연이은 부상의 악제가 겹치고 --

 
한국으로 돌아와 프로아구가 출범첫해 톱투수의 자리를 지키던

그의  화려했던 그의 기록은 사실상 여기까지가 끝이였다.

 1983년 전지훈련중 부상으로 시즌 내내 출장하지 못하다가

시즌 막바지 등판때 타구를 허리에 맞고 실려나갔다.

그때부터 부상과 재기가 반복되면서 불사조라는 칭호가 붙었다.

 

 

 15년동안

 통산 76승을 기록한 박철순 선수가 기록한 76승이란 숫자는 너무도 부족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인간승리와 투혼은 기록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으며

 9회말에도  역전의 희망을준 우리들의 야구의 영웅들 중에 하나였으며

 황량한 겨울을 지나고 프로야구 시즌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선한 백수들에게도 야구를 즐기면서 환호하고 한시름을  잊게하며

 인생사에도 재기의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준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베어스 팬들의 뇌리에 레전드로 남아 있다.

 박철순선수는 투수로써 가져야할 거의 모든것을 가진 투수라고 말하고 싶다.-청솔의 언제나푸른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