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견성암에서 들려오는 회심곡

2017. 12. 23. 19:41자전적 소설[후박나무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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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에게 무었이 되었삽기에   

살아서 이 몸도 죽어서 이 혼 까지도                     

그만 다 바치고 싶어질까요   

 보고 듣고 생각는 온갖 좋은 건      

모두 다 드려야만 하게 되옵니까?  

내 것 네 것 가려질 길 없사옵고요 

조건이나 대가가 따져질 새 어딨겠어요

 혼마저 합쳐진 한 몸이건만

그래도  그지없이 아쉬움  저 남아요                      

 당신은 나에게 무었이 되었삽기에  ..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에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뜨고 없는 잊을 길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불러 올적에
아~ 수덕사에 새벽이 운다.
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에 외로운
그림자 속새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홀로 울 적에
아~ 수덕사에 새벽이 운다..


위의 글은 한국 최초에 비구승만의 거처가 마련된 곳

수덕사 여승당 견성암에서 머물던 일엽 스님이 쓴 글이며 
아랫글은 가수 송춘희의 "수덕사의 여승"노래가사이다


내가 거제도 서이말 등대  돌쇠 할멈의 유품을 동숙에게 전해 주려고
수덕사를 처음으로 찾아간 것이 2005년 늦은 가을이었다
이때는 내가 천안에 거주를 하고 있을 때이며
서해안으로 나가는 45번 국도가 시원하게 뚫려 있어서
한 시간 반 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다

나는 1986년부터 1998년까지 거제도 서이말에서
근무를 할 때 같은 울타리 안에서  등대 (지금은 항로표지관리소)
직원들과 같이 인접해서  근무를 했는데
등대 인근에 오두막집에서 등대 일을 도와주면서 기거를 하던 돌쇠 영감 부부와 수양딸을
주제로  자전적 소설을 쓰고 있다



          덕숭산 뒷길 수덕사 비구승당 견성암 가는 산속 길에서 찍은 사진


동숙이 비구승들이 기거를 하는 수덕사 견성암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문을
부산에 있는 그녀의 친구였던 은숙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  
내가 수덕사를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는 

      동숙이   수덕사 견성암에서 1년여 머무르다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해서 만나지를 못 하였다

수덕사 가는 길은
두 갈림길이 있는데 45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덕산 읍내 나와서  갈산 쪽으로 40번 국도를 타고
수덕사  정문을 통해서 가는 길과  서산  해미읍성 방면으로 가다가
 덕숭산을 넘어 대원군 상여가 있는 지방도  갈산으로 가는 길로 나와서
  광천리 마을에서 덕숭산 반대편 산길을 넘어 도보로  수덕사를 가는 길이 있다
수덕사에서 비구 승려가 있는 견성암은 수덕사 대웅전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덕숭산 깊은  산속에  위치한 견성암은  반대편에서 도보로 가는 산길을 따라 넘어가면 
정문을 통해서 가는 것 보다 먼저 견성암에  접근을 할 수가 있다

내가 2005년수덕사 비구승이 머무르는  견성암까지  찾아갔으나 

거쳐를 다른곳으로 옮겨서 동숙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후
두 번째로 수덕사를 다시 찾아간것은 그로부터 3년이란  세월이 지난 다음이었다
동숙이 수덕사 경내가 아닌 수덕사 인근 마을 개인 사찰에서
기거를 한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였다 
당시 수덕사 인근 덕산 온천이 있는 덕산읍에는
수도권에 사는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땅을 매입하여 개발이 한창 진행될 무렵 이었다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서고
가든과 숙박시설이 대규모로 들어서고 있었다
덕숭산에서 수덕사로 이르는 산길이 있는  주변에도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섰다
그리고 한옥의 형태를 한 개인 사찰도 눈에 들어왔다

 전에도 언급을 했지만
해안가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청순한 여인 동숙이 무속인이 되었던 이유를 몰라서
 내가 무속 신앙에 대해 연구를 한 일이 있다고 했는데
 도심에 까지 파고든  무속인 집의 형태이며
 사찰표시가 걸리고  암유하는 간판과  대나무 깃발이 있는곳에 가보면 아직도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내가 덕숭산을 넘어서 수덕사 가는길 동네가 있는 광천리 마을 초입에 들어선것은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오후 무렵이였다
약도를 적어준 대로 그 개인사찰을 찾아가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 수덕사 가는 길  낮은 언덕위로 최근에 지은 듯한  전원주택이 여러 채 보였다
 
         견성암




외관은 한옥집 형태로 형태로 지어져 있어서
어느집이 절집인지 그려진 약도에서 보면 알수 없다
그리고 막상 그집을 찾는다 해도  세월이 많이 지나 동숙의 얼굴조차 히미하고
그집에 머무르고 있을  말못할  사정도 있을 터이고  그 집에 남자도 있을것인데
무턱대고 집 안으로 들어설수 없는 형편이고  설령 만난다 해도 
무슨말을 먼저 해야할지 난감 하기도 하였다
한참을 머뭇거리고 있는데  멀리 산속에서  인기척 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늦은시간에 수덕사를 가실려구요?"
광천리 넘어 고갯길에서  견성암 가는 산길을 접어들려 하니까
건성암에서 내려 오는듯 하는 작은 보따리를 든  60대로 보이는 두 여인네가  나에게 하는말이다
나이가 좀더 들어 보이는 여인은 승려들이 일을 할때 주로 입는 승려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기서 수덕사 갈려면 멀고 가는길도 험하고 "
내가 배낭에서  음료수와 간식을 꺼내  건네면서
"수덕사에서 내려오시는 길인가요?"
땅바닥에 주저 앉을려고 하기게 내가
캠핑용 간이 돗자리를 꺼내  땅에 펴주면서 쉬어가시라고 말을 건냈다
" 이 동네에 사세요?"
엉덩이를 무겁게 내려놓는 여인네에게 내가 말을 걸어보니
이 두여인들은 아랫마을에 거주를 하고 있으며
동네 토박이 사람들이고
수덕사를 매일 드나들다 시피하고 수덕사에 일을 봐주고 있다는것이다
수덕사에서 일당을 받고 경내에서 잡다한 일을 한다고 하였다  
  " 마을에 사찰처럼 보이는 한옥집이 있던데 
 그집에 대한 사정을 알고  계신가요?"

마을 언덕위에 있는 개인사찰(절집)에 머무르고 있다는
동숙의 근황에 대하여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타지에서 흘러든 스님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개인 사찰을 지었다고 하며
수덕사 사람들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집에는 승려복을 입은 남자도 있었고
여승복을 입은 여인들도 두 서너명 있었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도 그집을 오고 가고 하였다고 하는데
가끔 굿을 하는 소리도 들리기도 했다고 한다
내말에 별로 대꾸를 하지 않던
승려 바지를 입고 있는 할머니가  이렇게 말을 했다
그녀가   보름정도 그사찰에  머무르면서
 사찰일을  한적이 있다고 하면서
"그집에 여승복을 입은 이쁘장하게 생긴 중년의 여인이 있었지요"

거제도 바닷가에서 태어났으며
바다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하며
회심곡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 한다
 동숙이 이 개인 사찰에서 기거를 하다가 소문도 안좋게 들려오고 해서
 비구승들이 머무르는  수덕사 견성암으로 거처를 옮겨 갔다고 한다
동숙이 당시 40대 나이 이면 여승 중에는 젊은 축에 속한다   


         덕숭산 뒷길 견성암 가는 산속 길에서 찍은 사진


나는 해가 질 무렵 인근 덕산 온천마을로 다시 나가서
온천물이 나오는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수덕사 정문으로  편하게 견성암 가는 길이 아닌
덕숭산 뒷편 산속길을 통하여 견성암을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언덕길에서 내려 오고 있었다
길 옆에 있는 개인 사찰에는 인적없이 고요 하기만 하였다


수덕사에서 여승들의 거처가 있는 견성암은 

수덕사 대웅전에 산위로 한참을 걸어서 올라와야 있다
일반사람들은 수덕사 본채에 들르고
 비구승들이 머무는 견성암까지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최근에야 견성암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예전에는 표지판도 일반인들에게 잘 보이지 않게 해 두었다
내가 갈 무렵에는 오래된 수덕사에 새 건물을 증축도 하고
오래된 건축물이라 보수공사도 하고 있었다
수덕사 근처 마을사람들은
수덕사에서 일당을 받고 경내에서  일을 한다

-- 계속

         견성암 산속길에 있는 바위사진

         견성암 마당의 늘어진 소나무


                 

                  아래는 2005년도 수덕사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