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4. 10:47ㆍ청솔의 동영상
딱지치기는 종이로 접은 딱지를 땅바닥에 놓고
다른 딱지로 쳐서, 뒤집히거나 금 밖으로 나가면 따먹는 남자 어린이 놀이이다.
때기치기 또는 표치기라고도 한다.
딱지는 두꺼운 종이로 접은 것과 그림이 찍힌 종이를 오려낸 두 종류가 있다.
앞의 것은 어린이들이 접지만, 뒤의 것은 가게에서 판다.
그림 딱지는 원형 또는 네모꼴이며 그림 외에 별숫자 글씨도 찍는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아이가 딱지를 땅에 놓으면, 이긴 쪽이 제 것으로
그 딱지 옆을 힘껏 내리쳐서 바람을 일으킨다. 이것이‘넘겨먹기이다.
오른손잡이는 왼발을, 왼손잡이는 오른발을 딱지 옆에 댄다.
남의 것이 뒤집히면 먹고 다시 치지만, 실패하면 차례를 넘긴다.
이때 발을 바짝 대면 바람이 힘을 받아 잘 뒤집힌다.
또 저고리 단추를 풀어 헤치고 쳐서 바람의 양을 늘리기도 한다.
딱지를 살짝 밟아서 한 쪽을 들면 아주 유리하다.
이 때문에 ‘밟았다’느니 ‘밟지 않았다’느니 하는 시비가 곧잘 일어난다.
가장 뒤집기 어려운 것은 사방을 같은 길이로 접은 방석딱지로,
안에 두툼한 종이를 끼워 넣기도 한다. 딱지종이는 두껍고 클수록 좋다.
이밖에 금을 그어놓고 남의 것이 밖으로 나가거나,
제 것이 남의 딱지 밑으로 들어가면 따먹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남의 딱지 위에 얹히면 잃는다.
그림딱지는 화투치기처럼 고루 섞어 두 손에 쥔 다음 한 손을 내민다.
따라서 자신도 무엇을 가졌는지 모른다.
남도 딱지를 섞어 치다가 손에 잡히는 만큼 내민다.
그리고 계급 · 글자 · 숫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다음, 서로 손을 펴 보인다.
계급을 정한 경우, 계급이 같거나,
그것이 아닌 글자나 숫자가 나오면 다른 계급이 나올 때까지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높은 계급이 나온 쪽이 이기며, 손에 쥔만큼 남에게 준다.
종이 딱지처럼 한 손을 딱지 옆에 대고 손바람으로 뒤집어 먹기도 한다.
종이딱지는 청일전쟁 직후인 1897년 이전에 널리 퍼진 듯 하다.
군인 · 군함 · 전투 장면 그림이 주류를 이룬 까닭도 이에 있다.
원형이 장방형보다 먼저 나왔으며, 지름 2센티미터의 작은 것에서부터 20센티미터나 되는 큰 것도 있었다.
얇은 화선지 같은 것에 청 · 홍의 색종이에 동판화 특유의 검은 선을 찍고,
이를 황색 판지에 붙여서 둥글게 잘라낸 딱지는 세게 치면 ‘빵’소리가 났다.
판지를 붙이지 않은 그림딱지도 선보였다. 55센티미터 및 70센티미터의 종이 가운데에,
크고 작은 그림을 찍은 것이다. 이를 오려서 담배곽 상자나 두터운 종이에 밥풀로 붙여 딱지를 만들었
둥근 그림딱지가 도시에서 지방으로 퍼져 나갈 즈음, 네모 딱지가 나왔다.
큰 것은 세로 6센티미터에 가로 3.5센티미터이며, 작은 것은 4.6x2.5센티미터였다.
이밖에 4센티미터의 정방형도 돌았다.
그림은 둥근 것과 큰 차이가 없으나, 카드처럼 되어서 끈으로 꿰어 보관하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완성된 둥근딱지와 네모딱지는 근래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져 왔다.
제2차대전이 일어나면서 움츠러 들었던 딱지치기는, 1953년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면서 되살아났다.
1968년 대중예능연구회 주최의 성인 딱지치기 대회가 열렸고, 이를 텔레비전에서 중계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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