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나루터 사람들

2012. 9. 26. 07:00자전적 소설[여우고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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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에서 1825일의 기록중

1981년에쓴 일기장에서

 

임진강나룻터 사람들

 

임진각으로 가는 통일로를 따라 가다가 문산읍을 막 지나서 여우고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임진강나루터를 경유해서 율곡이이 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화석정[율곡리]으로 가는 길이 있다.

1980년대에 이길은 비만 내리면  진흙탕길이 되고 바윗돌이 들어나는

험한 비포장 소로길 이였지만 지금은 4차선 도로가 나있다 .

임진강 나루터에서 강을 건너 북으로 가는 이길이 원래 우리나라 국도1호선 길인데

임진강을 건너서 개성을 지나 신의주로 가던 길이다.
이길은 선조임금이 임진왜란때에 임진강나룻터에서 북쪽으로

피난을 가면서  강을  건너던 사연이 많은 길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길은  국도 1호선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임진각에서 끊어진 경의선 철로처럼 옛사람들의 기억속에나 있는 1호선 길이다 .
예전에는 임진나루라고 불렀는데 이제는그지명조차 사라져 가고 있다 .
임진리[임진강 나룻터]는 1980년초반까지만해도 강너머 민통선에 위치한 옛 동파리 지역의 논과 밭을
군부대 통제를 받고 나룻배를 타고 강을건너 농사를 짓고 있었다.

지금은 임진리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민통선 동파리지역으로 넘어가는 전진교[군부대 통제다리]가 생겨
차량을 이용하여 강을 건너고 있다.
지금도 영농[농사]철에서 한하여 주간에만 이지역을 드나들수가 있다 .
당시 임진리에는 약 30여호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강너머 동파리에 농사를 짓거나 강에서 건져올린 잉어고기등을 잡아 생계를 유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매운탕을 끓여 파는 식당이 두집이 있었는데
그후 이지역의 땅도 1980년대 중반부터 접경지역의 개발붐을 타고 도시사람들의 소유로 넘어갔다.
지금은 나룻터 주변에는 현대식 건물에 매운탕 식당으로 대부분 변해 있다 .
마을 언덕배기에 새로운 주택단지가 형성되어 있고 자동차 오토 캠핑장도
조성이 되어 있어서 예전의 고즈넉한 시골 강마을 분위는 없어졌다.
당시 민통선 지역에 농사를 지으러 임진강을 건너기위해 포구 역할을 했던곳에는 나룻배들도 몇척 있었다.
주로 노를 젓는 무동력선 들이였는데 나룻배에 각종 농기계를 싣고 노를 저어 강을 건넜다.
지금은 그 나룻배들은 없어지고  예전에 그강을 건너던 오래된 배한척은
강나루에서 끌어 올려져 언덕배기 매운탕 집앞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옛추억의 이야기거리나 되고 있다. 

  


 



 

 "오늘은 일찍 끝났나부네 ."
당시 임진강나루터 내려가는길목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고 언제나 할머니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인근 부대나  임진강 강안초소 병사들은 가겟집 할머니라고 불렀다.
1980년대초에 나는 군용트럭에 트레일러를 매단채

우로는 적성면 까지 좌로는 탄현면까지 이동을 하면서

장비를 시험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일을 마치고

부대복귀를 하기전에 이곳 임진나룻터  인근에 위치한 가게집에서 잠시 쉬어가곤 하였다.
지금은 그 할머니가 있던 가게집도 매운탕 집으로 변해 있지만

그때는 인근부대를 오가는 군장병들과 면회를 오는 사람들이 주로 가게를 찾아오곤 했다.
내가 이곳 임진리마을을 처음 찾아온 것은 1981년 가을이었다 .
"내 고향집 할머니도 우리할머니처럼 곱게 생기셨지요."
내가 당시 군인들이 주로 사먹는 보름달표 커다란 빵을 한입베어 우유와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름달표 빵은 내가 여산 부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을때 허기를 때우기위해 자주 사먹던 빵이였다.
그 당시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보름달빵 3개를 10초도 안되서 먹어본 기억이 있다.

훈련중 이동시 그 짧은 시간에 마치 px에 침투를 하듯 보름달빵을 사가지고

고무줄도없는 끊으로 묶여진 속옷에 감추어 화장실에서 찌그러진 빵을 삼키던 일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서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나는 군에서의 그런 오랜생활의 여파로 1분안에 밥을 먹어 치운다
이를 보고자란 내아들은 나보다 더빨리 밥을 먹어 치우지만 아직까지도
둘다 위장병은 없다 그러나 제대한 아들은 햄버거빵은 좋아해도

군에서 자주먹던 보름달 빵과 초코파이는 입에도 안댄다.
사람이 질리게 먹던 음식과 배고픈 맛으로 먹던 음식의  훗날 느낌은 다른것 같다.
지금도 보름달처럼 둥글게 생긴 보름달표 빵은 군부대 px 진열대에도 있고 시중에도  나오고 있지만
예전의  빵한개의 크기는 지금의 3배정도로 컸었던것 같다 .
댁의 할머니가 올해 연세가 몇인고?".

말린 호박으로 만든 떡을 덤으로 내놓으면서 내게 물어 보았다.
"내가 군대오기 1년전에 돌아가셨지요".
"칠순이 되시는 해였습니다. "
나의 아버지는 나를 낳고 군에 입대를 하셨다.
부친이 3년여 군에 있는동안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다 .
내가 태어난 고향마을은 겨울이면 오후 두서너시만 되어도 하늘이 어두워지는
하늘아래 첫동네 산골 마을이다  화전밭을 가꾸며 생계를 유지 하던때
1950년대말 그시절 누구라도 다 그러 했지만 나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가난 하기만 했다 .
지금도 보리밥을 누구는 추억으로 먹는다고 하는데 얼마나 질리도록 먹었는지
내나이 환갑을 향해 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보리밥 냄새는 죽어도 맏기 싫다.

"할머니 옛날 예기나 좀 해주세요."
나는 가게에 들르면 늘 습관의 언어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당시  따로 할 예기도 들을 이야기도 별로 없는듯해서
그냥 지나치치만 훗날 그할머니가  한마디씩 해준 그때의 이야기들이 나의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가게할머니는 당시 마을 이장을 보기도 큰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고
그할머니 둘째 아들 내외도 임진리 마을에 함께 살고 있었다 .
큰아들은 강건너 민통선 동파리에 논농사를 짖고 있었다.
임진강나룻터 마을에서 문산읍내로 나오는길은 큰비만 내리면  엉망이 되어서 차량이 다닐수 없어서

인근 율곡리에서 선유리로 방향으로 돌아나오곤 했다. 

내가 큰도로 나오길에 시장을 보러 나오는 가겟집할머니를  군용차량에 태워준 일이 있는데
차창밖으로  강건너 동파리지역과  율곡리,두포리와 문산읍내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에게 들려준 충격적인  이야기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몰라도 차마 여기서 옮겨적을 수가 없는 이야기 거리도 있다 .
가끔은 나를 국가관도 없는 사람으로 우습게  보는건지  아니면 나를 믿고 진실에서 말하는 소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제는 세상을 다살았으니 겁날게 없다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아뭍은 이웃마을 장산리 할머니와는 또다른 면을 보이기도 했었다. 


 


1981년 임진리마을에 스무 두서너살 정도로 보이는 앳된 여인이

이제막 첫돌이 지났을 만한 아이를 업고 나타났다.
임진리마을 사람들 조차 이 젊은 여인이 누구인지 처음에는 잘 몰라 수근댔다.
당시 임진리에도 나이가 많은 사람만 거주를 있는지라 젊은 여자와 애기를 보기가 쉽지는 않다
"뉘집 색시래요?".
토박이 마을사람이 물어 보아도 그여인은 말을 아끼고 있었다.
가게 할머니 둘째아들집 골목에서 할머니며느리와 함께나온 애기업은 그여인을  그제서야
동네 사람들에게 사연을 설명 해준다.
이 여인의 신랑이 인근 군부대에 사병으로 의무복무를 하고 있는데
그집 시댁에서 남편이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라고 임진리 마을에 집을 얻어 줬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당시 군부대가 거주하는 지역에는 이런저런 여러가지 사연과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런경우도 가끔 있었던 일중의 하나이다 특히 소규모 파견부대나 단위부대에서는 가끔씩은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무리 군부대 규정상 금지하고는 있지만  사람이 정에 살아가는 일이고 해서

그리고 오래동안 지속되는 일도 아니어서 부대 지휘관도 비공식으로 외박을 자주 내보내 주곤 하였다.
당시 군부대 주변의 농가에서 심어놓은 고추밭에 군인들이 들어가서 고추를 따서 가지고 간다던지
곡식을 심어놓은 밭에 군용차량이 밀고 들어가는 일도 있고 해서 군부대 주변 마을사람들은 군인들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현상도 있었지만 그러나 군이 주둔하고 있는 마을은 미우나 고우나

군부대와 함께 성장을 해온것이 사실이며 내 자식을 군에 보낸듯 생각하는 지역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군부대가 주둔했던 작은 도시가 커져 큰도시를 이루면 자연히 군부대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게 되는데 

그러면 훗날 각종 민원으로 군부대가 도심에서 쫒겨나다 시피해서 다른곳으로
이전을 하게되는 현상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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