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불빛 아래의 여인과 세숫대야

2014. 2. 2. 11:13자전적 소설[여우고개의 추억]

                                                                                               

           게시글  무단 복사를 금지 합니다

경기도 파주에서 1825일의 기록 중

1981년에 쓴 일기장에서


 용주골이라 불리는 파주 405번지 일대와

선유리 또는 주내라고 불렀으며 또는 대추뻘이라 불리는 파주 300번지 그리고

문산 시내와 통일로 임진각 가는 길옆의 운천리 마을 등

주로 미군을 상대로 한 집창촌과 술집들이 가장 왕성히

성업을 하던 시기가 1980년대 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기지촌이라 불린 이곳에는 용주골과 선유리, 법원리, 광탄, 봉일천 일대에

상당히 영향력 있는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파주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시절 우스갯소리로

문산이 돈산이라 불리던 경제 호황기였다.

임진강 건너에서 들려오던 대남방송의 공포와 총포소리, 밤을 대낮처럼 쏘아대던 조명탄,

임월교 밑으로 간첩이 넘어왔다 해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주 내에서 용주골로 가는 길에는 간이 보건 진료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미군을 상대로 하는 직업여성 당시에는 양공주 또는 양갈보,양색시라고 부르는 여성을 검진하더 곳이었다

그곳 간이 보건 진료소는 양공주들을 검진하고 보건증을 갱신해주곤 했는데

이것을 보고 지나가는 일반 사람들조차 대수롭지 않게 하나의 일상처럼 생각하였고

보건 진료소를 드나들던 양공주들도 하나 부끄러움이 없어 보였다.

당시의 그런 풍경은 그 지역 사람들도 그것에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외화벌이 한 수단으로 정책적인 면도 고려되었던 것 같다.

 
용주골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 기지촌으로 형성된 뒤

50여 년 동안 성매매 집창촌의 대명사 역할을 했다.

1980∼90년대 250여 업소에서 1000여 명의 여성이 일하며 전성기를 누렸는데

주둔 미군과 군부대를 향한 영업인 것 같지만

이곳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서울·고양·김포 등 수도권 서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20∼30대 젊은이가 대부분이었다.

용주골은 1953년 파주읍 일대 미군이 주둔하면서

10여 개의 윤락업소가 들어선 뒤 조성되었다


  최고 호황을 누릴 때는 350여 개의 업소가 영업을 했다.

2004년 말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성업을 이루다

그 이후로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지금은 예전의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내 마음."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이남이의 노래 앞 구절을 입에 달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평상시에는 멀쩡 하다가 술만 마시면 미친놈이 되어

눈동자가 약간 돌아 가면서 뒤에서 내가 불러도  머리를 약간 숙인 채 

고개만 45도 가량 돌리고 눈길은 앞으로 향하고 

내말은 들은척 마는척 하면서 제갈길을 가는 친구였다 .

나와는 군대 훈련소 동기생이 였다.

그런데 이친구가 술이깬 제정신이 된 상태에서는 근무도 잘하고

주위사람들과 사이도 원만하다.

미군부대 한국군인 [카츄사]으로 근무를 하고있고 있었는데

머리는 보통사람 이상으로 비상해서 군에서 위탁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류급 대학도 수료하였다.

그런데 그놈의  술이 원수가 되어 

월급을타면 거의 술집과 뻘밭[집창촌]에 갔다 바치고 

술취한 밤에는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야 잠을 이루는 괴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 
훗날 술에 쩔은 모습을 감춘채 멀쩡한 상태로 마누라를 속이고 결혼까지 하여 자식들은 훌륭히 키워내고

지금은 이세상을 떠나 저승에 가 있지만 아뭍은 재미있는 친구였다 .

1981년 봄에 그친구와  총각시절  경기도 문산땅에서 다시 만났다.

준호가 파주 선유리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한국군인  일명 카츄사 요원으로 전입을 오게 되면서 인데

나에게는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이득이 없었던 친구인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청춘시절 소심한 내성격을 그친구와 술을 먹고 함께 취해 길거리에서 오줌도 갈기며

세상을 향해 대범하게 행동하고  또는 세상을  우습게 보는 성격으로 개조시켜

험한세상을 인내 하면서 살아 가게하는  어쩌면 값어치 있는 우정 이였는지도 모른다 .

                             준호를 만난 인연은 1977년 여산 지금의 육군 부사관학교 훈련소 였는데 


     그가 태어난 고향 마을이 훈련소 부근이라 유년시절 일찍 부모를 여의고


     군부대 훈련장을 멤돌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한지 직업군인으로 지원입대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당시 군대 예기를 좀더 해보면 이러하다.


     여산에서  전반기 교육훈련 3개월을 수료하고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가는데


     이친구도 나와같이 후반기 교육을 함께 떠났다.


      그리고 후반기를 마치고 그리고 3차에 걸친 전문분야 교육까지 수료하고


     경기도 현리에 또 자대교육까지 2주간을 수료하고 부대에 배치되어 잠시  기간병을 생활을 함께  했지만


     1978년 나는 외국에서  들여온 도입장비 교육을 받기위해 다시 광주 상무대로 내려  갔으며


     준호는 군사영어반에 지원하여 카츄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기서   촌늠이 군에 지원하여 용광로에 들어 간것처럼  처절하게 인간 개조가 되어 나오는  


     눈물나는 군 훈련소 양성 교육과정에 생긴 일들과  경기도  현리에서 처음으로 자대 배치된후 


      운이 좋아서 상무대 교육사령부에서  장기 도입장비 교육을 받은 경력을 인정받아


     영천 3사관학교 수료후 28세에 준위로 임관후 낯설은 거제도에서 내청춘을 보내면서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경기도 문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장맛비가 주적주적 내리던날   나는 서울근처 원소속부대에서


                                 단체회식을 마치고   문산으로 돌아오던길에  문산 버스터미널에서  준호를 만났다.


                                  나는 이미 회식때 여럿이 넘겨주는 전입 축하주를 


                                 급하게 먹은 탓인지 술에 많이 취한 상태였다


                                 문산역을 걸어 나와서 버스터미널을 오기전 국민은행이 있었고


                                  우측 골몰길에 중국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경호와 나는 짬뽕국물을 안주삼아 소주를 들이 마시고 있었다.


                                  당시 문산시내에는 중국집이 별로 없었는데 


                                  파주지역에  면회를 오는 군인가족들과 병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이라


                                  지금도 추억속에 그 중국집을 기억하고 있는데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그 식당이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는 모처럼 시내에 나와서 보는 황홀한 밤거리 분위기에 끌려 술맛이 더해


                                  몸을 가눌수 없는 지경이 되도록  술을 마셔  만취해 있었다.


                                  중국집을 나서 골목길을 나오는데  준호가


                                  "야 ! 쭈니야  ".


                                  내가 대답대신 입꼬리를 위로 치우치며  가는 실눈을 뜨고 쳐다보자 


                                 "한잔 더하고 가자 " .


                                  평상시에는 멀쩡 하다가도 술 한잔만 지몸속으로 들어가면


                                 또라이가 되는 그친구와  함께 나도 또라이가 되어가기 시작 했다.


                                 내가 경기도 파주지역에 전입을 온지는 두달이 넘었지만


                                 새로 시작하는 부대의 일때문에  밤에 문산 시가지를 나가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준호와 함께간 그곳은  지금은 없어 졌지만 당시 문산교 부근에 있는 집창촌 이였다 .


                                 "자기야 옷벗고 꼬추딱어 ".


                                  분명 준호와 같이 이상한 집에 들어온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준호는 어디로 갔는지 없고
                                  희미한 분홍 불빛아래 어떤 여자가 반쯤찬 물이 담긴 세숫대야를 들이 밀고 있었다.


                                  그여자의 말에 나는 약간 정신을 차리고                              


                                  "같이온 내친구는 어디 있나요?". 내가 이렇게 물어보자


                                 "자기야  친구는 옆방에 있어".   " 빨리 옷이나 벗어 ".


                                 여자가 그렇게 대답을 했다  나는 담배 한개비를 피워 물고


                                  잠시  끊어졌던 내 두뇌의 조종실의   필름을 다시  감고 있었다.


                                 희미한 붉은 불빛아래 그여인의 벗은 몸을 찬찬히  내려다  보았다.


                                  펜티만 입은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검은 옴딱지가  군데군데 보였다.


                                 순간  여산 육군 훈련소에서 전반기 교육을 마치고  휴가도 없이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가던길  강경역에서 군용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도 그곳 지리를 잘아는 준호는


                                 강경 역전앞 사창가에 들러 워카를 신은채로 그동안 쌓인


                                 남자의 욕구를 해소를 하고 왔는데


                                 몇일후 그친구는 세면발이 [사면 발니]에 걸렸다.


                                 내가  후반기 교육을 받는중에 다른사람 몰래 그친구 음모를 도루코 면도기로 밀어주고


                                군용 DDT 살충제를 뿌려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면서도 그방을 나왔다.


                                 "자기야 어딜가누?".여자가 세숫대야를 방바닥에 내려 놓으면서 외쳤다


                                 나는  그여자가 있는 그방을 나와서  다닥 붙은 바로 옆방 문을 조금 열어 보니


                                 런닝바람에 아랫도리는 벗은채 그친구가 서 있었으며


                                 뚱뚱한 여자가 세숫대야를 준호 앞에 대고 마치 염소 젖을 짜듯 훑어 내리고 있었다 .


                                 그리고 세숫대를 내리는 동작과  그여자가 방바닥에 속옷을 벗고


                                 드러눕는 동작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준호야 ! ".


                                 "내가 옆에서 박자 맞춰 주까?".    


                                 "으이구 내가 못살어 " 하고 그 여자가 문을 쾅 닫아 버렸다 .           


                                                     

                                  ---  이어서 쓰는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