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7. 18:56ㆍ청솔의 가요산책
필자는 가수 은방울 자매가 부른 가요 마포종점을 유년 시절부터 좋아했다.
시골 농촌의 작은 마을에도 당시 마포종점의 노래가 아디오를 통해 자주 흘러나왔다.
현대에서 처럼 청소년들이 즐겨 듣는
팝송 음악이나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음악이 없던 시절이라서
이른바 봉짝 음악도 그 당시 소년 소녀들에게도 많이 불리어졌다.
가요 마포종점은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은방울자매 노래이다.
원로 작사가이며 시인 정두수선생은
고인이 되신 그의 절친한 친구 박춘석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다
마포종점의 노래 영감을 얻었다고한다
그때 번개에 얻어맞은 것처럼 영감이 왔다고 하는데
‘밤 깊은 마포종점..' 첫 곡조가 뇌리에 떠올랐다고 한다.
1960년대 마포종점 차고지였던 서울 마포구 지하철 5호선 마포역 앞
1997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39번지 마포 어린이공원에 세워진 ‘마포종점’ 노래비
빽빽히 들어선 고층건물 탓에 옛 마포종점의 흔적은 물론, 노래비를 찾기란 쉽지 않다
예전 마포종점에서 바라본 한강을 낀 마포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서민의 애환과 정취를 실어 나르던 전차가 사라진다는 아쉬움과 함께 연인의 슬픈 사랑이야기도 전해온다는
마포종점은 근대화 문명에 밀려난 전차 고별 노래다.
이 노래로 인해 마포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매년 10월이면 이곳에서 마포종점 노래자랑대회가 열린다.
큰방울인 박애경 씨는 작고했고 작은 방울 김형미 씨는
캐나다에 이민가 있어. 훗날 잠시 은방울 멤버로 들어온 가수 오숙자 씨는 은방울 자매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알려진 것과 달리 은방을 자매와 정두수 선생 셋 모두 동갑
박애경씨는 키가 커서 큰 방울로 불렸다.
도화동 큰길 건너 60년 전통의 용강동 ‘마포옥' 설렁탕집.
옛 허름한 2층 기와집은 흔적도 없이 4층 콘크리트 건물로,
이름도 ‘한우양지설렁탕’ 현대식 간판으로 바뀌어 었다.
마포는 당시 변두리였는데도 전차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니까 서민들이 많이 살았다.
서민들이 많다보니 옛날에는 설렁탕집이 많기도 했다
옛날 마포옥 뒤에는 넓은 갈대밭이 있었다.
작고한 박춘석산생, 이미자, 하춘화, 차중락, 남진, 나훈아, 문주란, 조용필, 이용복 등
함께한 가수들과 함께 이곳을 설렁탕집을 아지트로 삼았다고 한다
새벽 4시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면 밤을 새운 사람들은 일제히
이 설렁탕집으로 몰려나와 얘기꽃을 피웠고
지구레코드 공사 사무실은 수도극장, 명보극장이 있던 ‘스카라 계곡’에 있었고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들 대부분이 그의 추천을 받거나 그의 노래가사를 받았다.
시를 합쳐 그의 작품은 4000여편.
국내에서 가장 많은 노랫말을 지은 그는 저작권료만으로 노후보장이 된다.
마포종점’ 작사가 정두수의 창작 비화에 보면
당시 가난한 대학생 중에는 옥탑방에서 함께 지내는 연인들이 많았다
남자는 공부 잘해 유학가고 유흥가에서 바걸(여급) 생활로 남자 공부시키며 뒷바라지하던 여자는 연인을 기다리다
처절하게 미쳤노라는 사랑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1960년대 초 젊은 연인들의 사연이 노래 배경이 되었다.
작사가 정두선생의 절친한 술친구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차중락이 마포나루에서 함께 뱃놀이하면서
노래 한곡 달라고 내게 졸라댔다고한다.
그의 애절한 음색에 어울리는‘종착역’을 만들었는데
취입을 준비하던 중 아깝게 요절하고 말았다
종점·종착역·고엽 같은 애달픈 노래를 부르던 가수 중에 노래 제목 같은 운명을 맞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1zEafb03t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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